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군자는 두루 화합하되 편당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맹자가 말한 인의예지도 결국 비슷한 자리에서 숨을 쉽니다. 마음을 다잡고, 몸에 예를 붙이고, 부끄러움을 알고, 옳고 그름을 가르며, 사람 사이에서 인을 지키는 일입니다. 젊을 때는 그 말이 멀게 들리더군요. 그런데 사람과 부딪히며 살다 보니, 그 다섯 가지가 매일의 표정과 말투를 바꿔 놓는 힘이었습니다.
1마음을 먼저 다잡는 인의예지 습관
저도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회의에서 한마디 듣고 얼굴이 확 달아오르면, 그날 말이 다 거칠어지더군요. 그런데 숨을 한 번 고르고 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맹자가 말한 인의예지는 머리로 외우는 구호가 아니라, 흔들린 마음을 제자리로 앉히는 첫 동작이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 33장에서 “자기를 이기는 자가 강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강한 사람은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자기 안을 다독이는 사람인 거죠.
2작은 배려로 예를 몸에 붙인 경험

“예는 거창한 의식이 아닙니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문을 잡아 주는 순간, 인사말 끝을 조금 부드럽게 맺는 순간에 예가 몸에 붙습니다. 저는 예전에 택배 기사님께 물 한 컵을 내드린 적이 있는데, 그 짧은 장면 뒤로 하루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덕은 반복된 습관으로 자란다고 보았습니다. 예는 마음속 생각이 아니라 손끝과 말끝에서 익어 가는 거죠.
3부끄러움을 바로 세운 지혜의 순간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은 참 묘합니다. 잘못을 덮는 데서 끝나면 사람을 작게 만들지만, 잘못을 인정하는 쪽으로 가면 지혜가 자라납니다. 제가 후배 앞에서 성급하게 단정했다가 틀린 적이 있었는데, 그날 밤 책상 앞에서 한참 앉아 있었습니다. 맹자가 말한 지혜는 똑똑한 말재주보다, 내 허점을 먼저 알아보는 눈에 가까웠습니다. 『맹자』 이루 상에 나오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흐름도 그 맥락입니다. 부끄러움은 사람을 낮추는 감정이 아니라, 다시 서게 하는 기둥인 거죠.
4옳고 그름을 가를 때의 용기

옳은 말을 해야 하는데 눈치가 더 크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의는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서 있습니다. 회사에서 모두가 쉬쉬하던 문제를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꺼냈을 때, 분위기는 잠깐 얼어붙었지만 결국 피해가 커지는 일을 막았습니다. 공자는 『논어』 안연편에서 “의는 이익보다 앞선다”고 보았습니다. 맹자의도 그 길과 닿아 있습니다. 손해가 보이더라도 선을 가리는 순간,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하나 얻는 거죠.
5사람 사이에서 인을 지켜낸 실천
가까운 사이일수록 인을 지키기가 더 어렵습니다. 가족에게는 말이 쉽게 날카로워지고, 오래 안 친구에게는 배려를 생략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갈등 뒤에 남는 것은 대개 말의 내용보다 말의 온도였습니다. 저는 형과 크게 다툰 뒤, 늦은 밤 편의점 앞에서 뜨거운 캔커피를 나눠 마시며 겨우 풀린 적이 있습니다. 『논어』 안연편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인이다”라는 맥락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사과 한마디, 기다림 한 번, 끝까지 듣는 태도에서 인은 살아나는 거죠.
맹자가 남긴 인의예지는 결국 거창한 결심이 아닙니다. 마음을 다잡고, 예를 익히고, 부끄러움을 알고, 의를 택하고, 사람을 놓치지 않는 일입니다. 창밖의 빛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말투가 조금 부드러워져 있었습니다.